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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유감 詩畫有感] 이윤학 시인의 <폐등대>와 피에르 보나르의 <지중해>
 
이미루 기자   기사입력  2021/07/30 [01:28]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의 ‘지중해’>

 

삶을 그리는 것보다 그 그림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피에르 보나르

 

▲   피에르 보나르, 지중해    © 이미루 기자

 

평생 한 여인만 바라보며 그녀를 담은 그림을 385점이나 남긴 화가가 있다. 프랑스의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 스물여섯의 나이에 그는 그의 영원한 뮤즈가 될 스물넷의 ‘마르트 드 멜리니(본명 마리아 부르쟁)’를 만나 함께 한 48년 동안 오로지 그녀를 위한 그림을 그린다. 생활이 그녀였고 그녀가 생활이었다. 그림 속의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젊은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그녀는 진정한 신화였던 것이다.

 

가냘픈 새의 이미지를 한 그녀는 애초부터 자폐와 결벽증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자기 세계에만 빠져 강박적으로 몸을 씻고 목욕을 했던 마르트에 대한 연민으로 일생을 보낸 보나르는 32년간의 동거생활을 끝내고 1925년에서야 그녀와 결혼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욕조에 누워있던 마르트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도 결혼 이후였다. 이 작업은 그녀가 72세에 결핵성 후두염으로 사망할 때까지 이어지며 걸작 ‘목욕하는 여인’ 연작을 탄생시킨다.

그녀가 떠난 후 보나르는 그녀의 방문을 잠그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를 잃은 후 상실감에 그린 자화상은 마치 유령 같다. 그녀 없는 삶은 신화의 소멸이자 지옥이었던 것이다.

 

▲  피에르 보나르,  출처 -다음 이미지  © 이미루 기자

 

보나르는 58세되던 해에 마르트의 건강을 위해 내륙지역에서 지중해의 ‘르 카네 (Le Cannet)’로 이주하였다. 이때 많은 풍경을 화폭에 담았는데 60세를 지나며 일상 속에 숨겨진 색의 비밀을 찾아내며 더욱 선명한 색의 조화를 추구하는 독자적 색채의 세계를 확립시켰다. 20여 년을 그곳에 은거하며 평온하게 살았던 그는 마르트가 떠난 지 5년 후인 1947년 생을 마감했다.

 

그의 초기 그림들은 누드뿐 아니라 집 안팎의 소박한 일상과 친밀한 소재를 담아 사적인 정감을 강조하는 ‘앵티미슴 Intimisme’을 지향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폴 고갱에게서 영감을 받은 ‘나비파(Les Nabis, 예언자)’를 결성해 활동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1900년 이후부터는 빛과 색채에 천착하며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로 불리게 되었다.

한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도였으며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그였지만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그의 예술혼은 결코 억누를 수 없었던 마魔였을 것이다.

 

이윤학 시인의 시 <폐등대>의 화자는 오직 남편만 바라보는 아내이다. 그의 시는 담담하게 읽히다가 어느덧 속울음을 울게 한다. 읽을수록 긴 여운으로 다가오는 시는 '나(마르트)보다 더 오래 내게(마르트에게) 다가온 사람', ‘보나르’를 떠오르게 한다. 보나르의 그림 <지중해>는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강렬한 색채를 쓰지 않은 모노톤이다.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이다. 그림 속에는 폐등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그림을 걸어둔 그녀가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시화詩畫에는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작지만 큰 사랑이 담겨있다. 이토록 오래도록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같은 감동을 주는 시와 그림이 있을까?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서 아름다운 슬픔이 밀려오는 것은 서정의 힘인 것이다.

 

보나르는 “나는 모든 주제를 손안에 쥐고 있다. 돌아가서 이것들을 살펴본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다시 생각하며, 꿈을 꾼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시를 짓는 모습과 닮아 있다.

   -다음백과, 네이버 블로그 일부 참조-

 

 

<이윤학 시인의 시, 폐등대>

 

폐등대

  

나보다 일찍 잠들면 절대 안 돼요 외국인여자가

늙수그레한 남편의 등을 향해 돌아누우며 속삭였다

오늘은 앞니 두 개가 저절로 빠진 남편의 상실감을

무엇으로도 채워줄 수 없어 심난한 여자는 남편의

등골 오른편에 난 양성 종양을 문지르면서 덧붙였다

우리가 잠들고 나면 갈림길이 나온다는데 나는 언제

까지나 당신이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그

러니 당신이 어디로 가든 당신의 등은 내게로 향해

있을 거예요 너무 외로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먼저

떠나고 당신이 그린 그림에 비가 내린 아침이 온다

해도 나는 당신과 겸상해 아침밥을 먹을 거예요 당

신이 그린 내 얼굴이 당신을 보고 웃었듯이 라면이

끓기 전 앞니에 부딪쳐 계란을 깨던 당신의 습관을

따라하게 되었어요 수크령이 자란 오솔길을 당신 앞

에 서서 걸을 거예요 당신이 얼굴을 간질이던 웃음

을 떠올릴 거예요 당신은 또 다시 한 줌의 참소리쟁

이를 훑어 내 남방 등을 들추고 넣어주겠지요 당신

은 등을 돌리고 달아나겠지만, 나는 당신이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마저 그릴 거예요 저녁이 되면 당신의

그림들을 폐등대를 향해 걸어둘 거예요 당신은 나보

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이에요 나는 당신이 사

용한 마우스피스를 알고 있어요

  

▲    이윤학 시인,  본인 제공 ©이미루 기자

 

자서自敍, 이윤학 시인

 

 

동산에 오솔길이 생겼다. 꿈틀거리며 동산을 넘어가고 내려오는 오솔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팽나무 근처 움막 터를 잡은 그들은 볏짚을 썰어 넣고 황토를 버무려 흙벽돌을 찍어냈다. 잡목을 베어 껍질을 벗겨 말렸다. 그들의 임시 거처 몽골 텐트 주위에 고추잠자리 떼를 지어 날았다. 동산 너머 사람이 떠난 어촌과 어항과 등대가 보였다. 무인도에 산다는 바다제비가 찾아와 절벽 위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쳐 돌아갔다. 그들은 모터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가 이삿짐을 실어 날랐다. 자급자족할 만큼 동산을 개간해 텃밭을 만들었다.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다. 정남향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한 그들은 16V LED 등을 켜고 살았다. 그들의 도란거리는 목소리가 오솔길을 따라 동산을 오르내렸다.

 

 

 

이윤학 시인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먼지의 집』(문학과지성사, 1992)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문학과지성사, 1995)『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문학동네, 1997)『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문학과지성사, 2000)『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문학과지성사, 2003)『그림자를 마신다』(문학과지성사, 2005)『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학과지성사, 2008)『나를 울렸다』(문학과지성사, 2011)『짙은 백야』(문학과지성사, 2016)『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간드레, 2021), 장편동화『왕따』(문학과지성사, 2006)『샘 괴롭히기 프로젝트』(문학과지성사, 2009) 『나는 말더듬이예요』(주니어RHK, 2010)『나 엄마 딸 맞아?』(새움, 2012)를 펴냈으며,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    Nude in the Bath and Small Dog,   (1941-6)© 이미루 기자

 

▲  La Toilette (1932)  © 이미루 기자
▲  욕조의 분홍 누드, 1924년경,  © 이미루 기자

 

▲  1917_Femme_accoudée  © 이미루 기자

 

▲     © 이미루 기자

 

▲   테라스  © 이미루 기자

 

▲   정원의 초록드레스를 입은 여인, 1892  © 이미루 기자

 

▲  오후의 정원 , 1891   © 이미루 기자

 

▲  Le_Cannet_baie_de_Cannes© 이미루 기자

 

▲Pierre Bonnard ◈ Self-Portrait (1945 )
     © 이미루 기자




* 시화유감詩畫有感은 바쁜 현대인들을 위한 감성마당으로 한 편의 시와 한 점의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을 통해 잠시동안 잃어버렸던 감성을 깨우며 몸과 마음에 쉼과 안정감을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로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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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30 [01:28]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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