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봄
정태중
목포 앞바다는 바다와 먼 바다
뭍 이야기 쪼아대는 갈매기는 봄과 먼 봄
유달산자락 노란 성게 꽃 피었다고
섬과 항구의 물 갈라진 틈으로
성게 뿔 드러내고, 곁눈질입니다
성게 꽃이면 어떻고 산수유면 어떻고
생강 꽃이면 어떻고 성게 알이면 어떻고
배 타고 가나 바다 타고 가나 한 몸
앞바다나 압해도나 한 몸
갈매기와 두루미 한 몸이라고,
슬픈 세월 앞에 두고
파도 속으로는 사공의 노래만 서로 웁디다
목포나 팽목이나 목구멍만 서러 웁니다
< 평설 > 선중관 / 시인. 수필문학가. 시와글벗 회장
정태중 시인의 <용서의 봄>은 시와글벗문학회 동인지 제9집에 실린 시이다. 시제(詩題)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어떤 비장함과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용서(容恕)'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용서하기까지는 마음속 갈등과 고뇌가 있었을 것이고, 그 마음의 풍랑을 누르고 내린 나름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용서를 '봄'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제를 <용서의 봄>이라고 했다. 봄은 죽음 같았던 겨울이 가고, 만물이 새롭게 움트고 소생하는 계절이다. 봄은 새로움의 상징이고, 새 출발의 기점이 된다. 봄은 화사하고 싱그럽다. 그 봄에 용서의 마음을 갖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일까? 시인은 용서를 이야기했지만 용서의 대상에 대해서는 작품 어디 한군데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 만물이 소생하는 꽃피는 봄날 용서를 한다고 했으니, 어떤 일에 대하여 누구를 새봄에 용서할 것인지를 밝혀야 독자들이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필자를 비롯하여 독자들은 용서의 대상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시를 살펴보면 몇 가지 지명(地名)이 나온다. '목포 앞바다' '압해도' '팽목' 등이다. 그리고 제5연의 내용을 보니, "슬픈 세월 앞에 두고/ 파도 속으로 사공의 노래만 서로 웁디다/ 목포나 팽목이나 목구멍만 서러 웁디다" 라고 하였다. 지명과 시구(詩句)의 슬픈 세월을 연관해 보니 이것은 분명 세월호 사고와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로, 당시 배에는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 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이었다.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채 피워보지도 못한 꽃다운 어린 학생들의 희생은 안타까움을 넘어 전 국민의 슬픔이며 비극이었으며, 지금도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이후 당시 정부의 태도가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자꾸만 감추려 하고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소위 우익단체라 불리는 회원들과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세월호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기는 커녕, 비아냥거리고 조소하며 폄훼의 발언을 일삼았으며, 최근에는 4.15 총선 과정에서 부천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자의 세월호 막말 파동으로 그 당의 참패의 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 마디로 세월호 참사는 단순 선박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폐항 시킨 낡은 배가 한국에 들어와 선실을 늘리고 개조하여 정식 운항을 할 수 있었던 것부터 국가 시스템의 오작동은 시작되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침몰 후의 구조작업이다. 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해경 간의 철저한 소통 부족 탓으로 구조작업은 이미 자력으로 탈출한 사람 건져내기에 머물러 버렸고, 배 안에 갇혀있던 수많은 승객에게 탈출하라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선장 등 승무원들만 팬티 바람에 탈출하기 바빴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인재에 가까운 대참사였다.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은 배가 침몰한 곳과 가장 가까운 항구로, 세월호에 갇힌 학생들의 가족과 봉사자, 그리고 아픔을 위로하는 국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은 장소이며, 이후 참사 3년 만에 인양되어 물 밖으로 나온 세월호는 목포 신항에 전시되어 있다.
물론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왔다 해서 진실마저 인양된 건 아니다. 당시 정부는 왜 그리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고 하고 축소 은폐하려 했는지, 정확한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등 밝혀야 할 사항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 새봄에 그런 모든 참사의 폐단을 '용서'라는 관용으로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용서는 어찌 보면 상대를 위한 관용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위한 마음 추스름이기도 하다. 시인의 마음은 그동안 마음이 아니었다. "목포 앞다바다는 바다와 먼 바다/ 뭍 이야기 쪼아대는 갈매기는 봄과 먼 봄" 가까운 목포 앞바다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봐도 그저 먼 바다 같고, 봄이 왔는지 겨울이 왔는지 계절의 감각도 잃어버린 막막한 가슴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용서하기로 했다. 차마 '세월호'를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 참사의 온갖 불합리함을 용서하고, 새봄의 새순처럼 새로운 마음의 출발을 하겠다는 것이다. 3연과 4연을 보면, "성게 꽃이면 어떻고 산수유면 어떻고/ 생강 꽃이면 어떻고 성게 알이면 어떻고/ 배 타고 가나 바다 타고 가나 한 몸/ 앞바다나 압해도나 한 몸/ 갈매기와 두루미 한 몸이라고," 했다.
먼저 간 어린 학생들의 희생은 아픔이고 슬픔인 것이 확실하지만, 우린 이렇게 한 몸으로 함께 있는 것을, 자연이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너는 바다에 잠들어 있고, 나는 여기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을 ........ 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