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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시인 <시와달빛문학작가회 >
어둠에서 길을 찾다
 
오현주 기자   기사입력  2020/04/30 [12:47]
▲     ©전남방송
 

 

 

어둠에서 길을 찾다

 

 

               김정희

 

나는

태양과 백열등 아래에서 길을 잃었다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스쳐 가는 어둠에게 길을 묻고

빛의 부재를 기다리다 허물어진다

 

백골로 누운 밤엔 비가 내린다

바람이 어둠을 밀고 나오면

나는 비로소 어둠을 먹고 빛을 토해낸다

하얗게 굳어진 몸을 나를 태워

가는 너의 뒷모습이나 밝혀 줄까

빛무리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의 길을 어둠으로 찾았던 것처럼

나를 태워 누군가의 길을 밝힐 수만 있다면

내 눈물쯤 기꺼이 흘리리라

 

<약력> 김정희

경북 울진 출생

아호: 휘월 (輝月)

시와달빛문학작가협회 부회장

시와달빛동인회 부회장

한국문학작가회 시부문 신인단 등단

한국문학작가회 대구, 경북지회장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 회원공저: '심상의 지느러미'

        '푸르름 한 올 그리다'

        '눈물만큼 작은 하늘'

        '꾼과쟁이'

        '창작과 의식"

        '칠곡문학' 외 다수

 

 

▲     © 전남방송

 

   < 평설 > 이광희 / 시인. 시와달빛문학작가회 회장

 

시인은 언어로 집을 짓는다. 다양한 소재를 동원하되, 절대 마음에 못을 치지 않는 그런 견고한 집이다. 이러한 언어의 집에 기거하면서 때로는 비바람을 맞고, 때로는 눈과 서리를 맞으면서 다양한 체험의 선험적 결정자(apriori determinant)로서 상상의 그림을 발현해낸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치유하면서 타인의 정서를 치유하는 진술가이다.

 

우리가 시를 이해하기 전에 시인이 살아온 전기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 또한 상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나마 김정희 시인의 삶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좋을듯 싶다. 김정희 시인은 대게의 본고장 울진 후포가 고향이다. 바다에 살다가 바다로 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바다는 꿈이었고 일터였다. 그러나 시인의 바다는 언제나 물빛 그리움에 사무치는 바다이다. 눈 안에서도 막 꽃이 필듯한 막내딸을 어미가 기다리는 뭍에 맡기고 수평선의 끝에 푸르게 잠든 아버지의 바다 울진... 어쩌면 그곳이 치유를 바라는 시인의 시적, 정서적 발원지임을 찾아볼 수 있다.

 

김정희 시인은 호가 '휘월(徽月)'인데 '아름다운 달'의 이미지를 그대로 풍기는 시인이다. 외적 긍정과 내적 부정의 힘이 서로 균형을 잡고 있어 발현된 언어적 마감은 독자로 하여금 애련한 삶의 풍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토록 거센 파도가 심연의 어휘를 뛰어넘듯이 시인의 시 세계 또한 강단 있는 어조와 논리의 단호함으로 표현된다.

 

김정희 시인의 <어둠에서 길을 찾다>는 가슴 바닥을 훑고 가는 온랭(溫冷)의 바람과도 같다. 빛과 어둠 사이로 전개되고 고립된 삶과 그 내면의 영토에 숨어있는 피사체가 수신자의 가슴으로 투사(投似)되는 것이다. 시문의 내용으로는 아버지라는 아가페적 이미지와 연분을 그리는 에로스적 이미지, 이 두가지의 중의적 의미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온 시인의 본질적 삶과 정체성으로 접근을 조심스럽게 시도해 보려고 한다.

 

'태양과 백열등'이라는 밝고 따뜻한 감각적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옮겨 놓으며 화자가 어린 날 겪게 되는 혼란과 갈등, 더 나아가 개별화되는 현대인의 정서적  이미지를 통시적 관점과 공시적 관점을 동시에 그려내고 있다. 화자가 빛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애써 갈망하면서도 이미 절망으로 인식된 어둠이라는 환상통에 마치 전이(轉移)되는 양상이다.

 

1)연(起部)에서 살펴 보면,

'밤과 낮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스쳐 가는 어둠에게 길을 묻고/ 빛의 부재를 기다리다 허물어진다'

 

동해 바다는 마음의 언덕이 무너진 곳이다. 가눌 수 없는 아픔과 그리움이 요동치는 바다에 화자의 영원한 갈망이 빛이었을 아버지의 부재야말로 시련의 파도로 허물어진다. 이는 그리움의 언어가 재현하는 강렬한 아픔이 아닐까.

 

그토록 분간이 어려운 처지임에도 막막한 위기상황에 백골이 되도록 갈망하는 뭔가가 있었으리라. 이렇게 지친 영육(靈肉)의 한계와 능동적 희생이라는 이분법적 상황은 시문 전체를 '활과 리라의 현(絃)처럼 더욱 긴장 시킨다. 시의 언어적 긴장(tension)은 곧 화자의 문학적 초상화를 그리는 태도라 볼 수 있다.

 

시제<어둠에서 길을 찾다>의 화두는 결국 2)연의 '나를 태워가는 너의 뒷모습이나 밝혀 줄까'와 종연(終聯)의 '나를 태워 누군가의 길을 밝힐 수만 있다면'으로 극명한 시인의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하얗게 굳어진 나를 태워" 꺼지지 않는 촛불로 산화하려는 애틋한 기다림은 가슴에 응어리진 아버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다. 여기서 과거 속의 '너'를 '아버지'라고 한다면, 현재 속의 '너'는 바로 '그리움'일 것이다.

 

흔히 시에서 상관물로 등장하는 산과 바다는 외형적 거리는 멀지라도 정서적 거리는 동일하다. 산은 속으로 울고 바다는 바깥으로 운다. 그럼에도 플라톤의 이데아(ldea)的 상관물의 교착점은 모두 '깊다'와 '운다'는데 각각의 직시적(直時的) 공통점을 지닌다. 심리적 내면에 가라앉은 심연의 바다와 여명의 촛불과 함께 하얗게 타는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공감능력을 갖는다.

 

이렇게 한 시인의 시에서 응집된 개아적인 표징(標徵)은 수신자의 감성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애련한 모습으로 사뭇 독자의 가슴 속을 파고들게 된다. 시적 화자의 염원은 곧 수신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이뤄 문학적 호기심과 함께 진한 호소력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牛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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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30 [12:47]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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