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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루의 문화 포커스] 시인들이 사랑한 바다, 와온臥溫
 
이미루 기자   기사입력  2020/02/17 [23:09]

  - 고단한 생을 놓고 잠시 쓰러져 안겨보고 싶은 넓은 품

 

▲  까무룩하게 아득한 와온바다, 갯벌   © 이미루 기자

 

와온 바다에서는 모든 평범한 것들, 못 생기고 허름하고 상처받은 것들이 따뜻하게 개펄 위에 몸을 눕힙니다.

-곽재구, ‘와온바다에서 반야차를 마시다’에서-

 

곽재구, 도종환, 정윤천, 나희덕 등 많은 시인들이 와온을 노래했다. 박완서 작가는 와온갯벌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냈다. 와온은 어떤 곳이기에 많은 작가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였을까. 바람의 조용한 숨결마저 ‘이리로 와보세요’라고 듣는 시인들의 감성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와온을 바라보게 하였던 것일까?

 

▲  정겨운 산의 굴곡과 갯벌은 흑백사진의 추억을 소환한다.  © 이미루 기자

 

따뜻한 곳에 누워있는 바닷가 마을 

와온臥溫은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과 항이 있는 바닷가이다. 순천만의 동쪽 끝인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에 자리하고 있다. 누울 와臥, 따뜻할 온溫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거기, ‘엄마의 품처럼 따뜻한 갯벌’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지만 갯벌과는 별로 상관없이 지어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전후에 형성된 마을로 ‘양지바른 곳에 소가 누워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라고한다. 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있는(臥) 모습과 닮았으며, 겨울에도 따뜻한(溫) 날씨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려한 간판도 즐비한 횟집도 없는 바닷가 마을. 바람은 차가웠지만 빨간 우체통을 달고 있는 마을 풍경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큰길가에 ‘와온슈퍼’라고 써져 있는 간판이 보인다. 누군가 “꽃게를 넣은 와온슈퍼의 라면을 꼭 먹어보라” 일러주었다. 기대에 차서 찾아갔는데 하필이면 주인 아주머니가 외출 중이어서 허탕을 치고 말았다. 주인이 안 계시면 먹을 수 없는 라면, 여행지에서는 그게 더 인상에 남는 일일 수도 있었다. 바로 옆집의 포장마차에서 붕어빵과 어묵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가장자리의 낮고 정겨운 산들, 풍만한 나신을 드러낸 갯벌의 오후 속으로 몇몇 여행객의 실루엣이 정겨워 보인다.

 

▲    갯벌에 드리운 윤슬, 신비로운 기운을 띠고있다 © 이미루 기자

 

▲  정직한 글씨체의 간판이 달려 더욱 정겨운 와온슈퍼   © 이미루 기자

 

▲   호박붕어빵과 어묵이 찬 바람을 데워주었다.  © 이미루 기자

 

안기고 싶은 와온의 갯벌

와온 해변은 순천 10경 중 하나로 ‘남파랑길 순천61코스’인 길이 3km의 해변이다. 특히 와온에서 노월까지의 해안 길이 최고로 꼽힌다. 이곳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은 단연 갯벌이다. 썰물과 만조 사이에서 갯벌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물론 은유적인 표현이다.

드넓은 회색 빛 뻘밭과 윤슬, 가닿을 수없이 아득한 저 끝은 미지와 맞닿아있을 따름이었다. 엄마의 자궁과 젖가슴, 생명을 품고 키우는 대상으로 묘사되어지는 갯벌에는, 짱뚱어 새꼬막 맛조개 등이 서식한다. 꼬막 생산지로도 유명한 와온의 뻘에는 대나무가 여기저기 꽂혀있어 꼬막 서식지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    비단이불을 깔아 놓은 듯한  저곳에 눕고 싶어진다 © 이미루 기자

 

▲   갯벌 너머로 물빠진 솔섬이 보인다.  한국의 ' 이소라 벨라'라고 불러봐도 좋다.© 이미루 기자

 

동강처럼 완만한 굴곡의 뻘길이 수평선 위에 반짝이는 장면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누구에게나 흑백사진 속 추억을 소환하게 할 것 같았다.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나희덕 시, ‘와온에서’ 중에서)처럼 그녀(갯벌)의 질펀하고 푹신한 품속에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 같았다.

 

예전에는 작은 주막이 있어 어부들이 조업 중에 목을 축이기도 했었다는 작은 무인도 솔섬은 시칠리아의 작은 섬 ‘이소라 벨라(Isola Bella)’를 떠올리게 하였는데, 해변의 한쪽에 모여 서성이는 갈대들마저 바닷가의 서정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  갈대와 갯벌과 솔섬과 윤슬, 그리고 갯벌위의 오두막   ©이미루 기자

 

▲ 너른 갯벌의 가장자리 한쪽에는 갈대밭이 무성하고 다른 한쪽에는 고은 능선의 산이 뻗어있다.    © 이미루 기자

 

시인들의 와온

순천시에서는 매년 마지막 날 ‘와온 해넘이 행사’를 이곳에서 펼친다. 해질 무렵 노을이 지는 와온 갯벌은 장대하고 황홀하여 누구나 그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어보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상처와 고단함, 욕망과 대결들 속에서 잃어버린 존재로의 회귀를 일깨워 주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의 선물이 아니었던가.

 

도종환 시인은 ‘와온에서’라는 시에서 “수 만 개 햇살의 꽃잎을 반짝이며/ 배를 밀어 보내는 아침바다가 있고”라고 했으며, 나희덕 시인은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 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 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중략)//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종일(일출, 일몰, 한낮)토록 아름다운 와온 해변을 노래하며 그 해를 훔쳐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지역의 해도 똑같은 해인데 하필 와온의 해를 훔쳐가고 싶다고 하였을까. 그것은 그만큼 아름답다는 강조의 말이 아니겠는가.

 

▲   하늘과 갯벌에 각각  떠있는 태양, 두개의 태양이 와온을 온통  부시게 한다.  © 이미루 기자

 

▲ 저 수평선 끝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 이미루 기자

 

세상은 없고 나도 없고 오직 빛만 존재하는 것 같은 모습에 눈과 가슴이 전율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얻고 싶다면, 와온 해변으로 떠나 보도록 하자. 곽재구 시인은 "와온으로 오세요. 달빛으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시 ‘와온 바다’에서는,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 최초의 휴식이다(중략)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라고 했다. 달도 해도 쉬어간다는 쉼의 공간이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평화롭고 따뜻해지는 일이겠는가.

 

▲ 배가 쓸쓸히 놓여있어 더욱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와온의 겨울  © 이미루 기자

 

▲  갯벌산책로에 놓인 구조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 더이상의 인공 구조물은 필요없어 보인다.   © 이미루 기자

 

에필로그

와온에서는 귀가 열린다. 가슴이 열리고 감각이 열리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신화가 열린다. 말이 필요 없는 풍광과도 같은 것. 그 아름다움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동화되어 버렸다고 말하면 될까?

사방에서 별처럼 빛나는 해의 일광욕을 보며 어딘가로 향하는 바닷길을 따라 삶의 행로를 그려보기도 할 일이다. 적막하지만 쓸쓸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있는, 오래되었지만 희망이 서려있는 듯한 와온 해변에 서서 그대들의 사랑도 더욱 진하게 타올라 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정윤천시인의 시 ‘와온에서’를 다시 한번 외워보기로 한다.

 

와온에서

정윤천

 

와온*에서는

세상의 모든 해가 여기 와서 죽는다

 

저녁쌀을 씻을 때도 뜨물 같은 게 한참이나 나왔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한결 뚜렷해지던 쌀알들처럼

해도 자신의 몸을 씻는다는 것인지

 

와온 곁으로 한참을 서보아라

너도 한번 스러져보고 싶지는 않겠니

 

질투도 원망도

와온의, 저녁 한때를 닮아보고 싶지는 않겠니

와온의 지는 해여

저만큼의 내용으로 타올라보지 않은 날들이었다면

무엇으로 여기 와서 바라보게 해줄 수 있었겠니

 

너를 향하여 속삭여주기는 하였던

떨리는 한마디인들

저녁의 바다 한가운데로

내어 보일 수 있었겠니

 

얻은 것에게도 잃은 것들에게도

그쪽을 향하여 찬란해볼 수는 있었겠니

 

* 전남 순천시에 면해 있는 일몰이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정윤천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에서.

 

▲   한쪽에 쌓여있는 꼬막조개무덤  © 이미루 기자
▲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대나무들 © 이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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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7 [23:09]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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