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제
柳坪
4.19가 나던 해였제. 풍어제를 지낸 후 연이틀 파도가 일어갖꼬 뭍에서 온 무당패들이 나가질 못했어야. 바다가 지 육신을 비틀어 밑바닥을 훤히 다 보여줄 기세였응께 말이여. 그때 젊은 만신 하나가 마을을 돌아 댕기며 사주풀이를 해주지 않았것냐. 그란디 그날밤 혼자된 목포댁 메누리한티두 걷잡을 수 없는 풍랑이 일어부렀어야 세월이라는게 말이여 가만히 냅둬도 흐르는 거이제. 달이 차고 기울어져 커져 가는 근심을 본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는디,
결국 실종된 지 나흘만에 허리에 광목천을 동여맨 채 저짝 너머 할매바위 쪽에서 떠올랐지 뭐냐, 숭하기도 하지 아듬해 다시 그 무당패들이 섬에 들어와 풍어제를 지내게 되얐는디, 한 젊은 만신이 목포댁 며느리 소식을 묻지 않았것냐. 순간 섬뜩하게 짚히는게 있어 빼고 보탤 것도 없이 고대로 얘기해줬어야. 그 처자 소식을 묻던 만신이 같은디서 주검으로 떠오른 건 사나흘 후 쯤 이었을거여 쩌그 저 소낭구 아래 쌍분雙墳 보이지야?
평설) 선중관 시인/ 수필문학가/ 시와글벗 회장
남도의 자그마한 섬에서 풍어제를 올리던 날 밤 벌어진 젊은 과부와 만신의 사랑이야기는 마치, 장가도 들지 못한 채 늙어가는 장돌뱅이 허생원과 어느 부잣집 처자와의 단 한 차례 치러진 물레방앗간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메밀꽃 흐드러지게 핀 달밤 벌어진 사랑이나, 풍어제날 밤 벌어진 과부댁 사랑이야기를 그 누가 분륜이니 비윤리적이라 하여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절박한 사람끼리 맺어진 하룻밤 사랑행위야 말로 인간애人間愛의 본능적 표출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남녀 관계에 대한 제 삼자의 시선은 냉혹하다. 손바닥만 한 섬에서 점점 보름달처럼 부풀어 오르는 과부의 배를 보며 속달거릴 주민들의 눈총이 두려워 결국 바다에 몸을 던져버린 과부의 처신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일 년 뒤 찾아온 만신 역시 과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같은 장소에서 몸을 던져버린 순애보가 그저 심금을 울리면서 가슴에 저리저리 남는다.
본 작품 ‘풍어제’ 는 마을에서 일어났던 지나간 사건을 짙은 지역 말로 엮어낸 재치 있는 필치筆致가 눈에 띄는 산문시라 할 수 있겠다.
산문시를 얼핏 잘못 쓰면 어떤 상황을 진술하는 한 설명문이 될 수도 있다. 시는 소설과 수필이 아니다. 산문시는 산문의 형식을 빌렸을 뿐, 그 속에는 시가 갖춰야할 작가의 감정과 상상력이 녹아있어야 한다.
본 시에서 유평 시인은 작가의 상상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 1연의“그날 밤 혼자된 목포댁 메누리한티두 걷잡을 수 없는 풍랑이 일어부렀어야“라는 표현과, 제 2연에서는 “달은 차고 지울어 커져 가는 근심을 본인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는디“라는 표현은, 이 시에서 등장하는 젊은 과부에게 벌어질 앞으로의 사건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구절이며,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시 어디에도 과부가 물에 빠져 자살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유평 시인의 시‘풍어제’ 는 자칫 옛이야기 하나 풀어놓은 짤막한 산문에, 작가의 상상력과 남도의 사투리를 풀어놓아, 읽는 이로 하여금 사건 당시 시점時點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