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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소식] 정윤천 시인, 제13회 지리산 문학상 수상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 출간
 
이미루 기자   기사입력  2019/07/22 [18:04]

 - 자신만의 어법으로 깨워낸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

- 일주일 만에 초판 매진, 문단 안팎의 높은 관심

 

▲   정윤천 시인  © 이미루 기자

 

쇠 치는 대장간이 남아 있었다 튀밥 솥 엉덩이 아래가 금방이라도 열릴 듯했다 국밥집 앞에는 그런대로 줄어져 가던 사람 띠가 늘어서 있었다 대장간 안이 외따로웠다 호밋자루를 고르는 노파의 손길이 재작년보다 주저거렸다 밥값도 못 건진 풍구불이 꺼져가는 소리를 내었다 대장간이 남아 있었던 근처에 거기 붙어 있던 대장장이의 팔뚝이 자랑스러웠다 국밥집 돼지 창자 냄새가 그리 떳떳하지는 않았다 국밥만 하고 간다는 발걸음 하나가 갈지자를 그었다 막걸리도 몇 사발 껴들었던 것 같았다 튀밥 솥 밑에서 봄꽃이 피든 소리는 변함없었다 자랑스럽거나 부끄러웠다는 말들이 그저 한 몸 같았다 화순이나 담양 장날 해름참 같았다.

-<서정시 같았다> 전문

 

정윤천 시인이 9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의 첫 장(1부)에 놓인 이 시는 여전히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그만의 필법을 담고 있다. 아니, 더 깊어지고 넓혀졌다고 일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90년도에 무등일보 신춘문예와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후 <실천문학>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등 국내 유수의 출판사에서 간행된 시집들을 통해 남도가락과 민초들의 정서를 꾸준하게 노래했던 화순 출신의 정윤천 시인(59)이 오랜 침묵 뒤에 여섯 번째 시집을 상재하였다.

 

제 13회 지리산 문학상 수상시집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시집은,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해의 지리산 문학상 수상작품들이 게재된 시집이다.

윤동주 서시 문학상과 지리산 문학상 수상 시인들을 대상으로 시집 출간을 시작한 달쏘 (달을 쏘다) 출판사에 따르면, 정윤천 시인의 이번 시집은 발간 일주일 만에 초판이 매진될 정도로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하였다.

  

▲  시집<발해로 가는 저녁> 앞 표지     ©이미루 기자

 

이경림 시인의 추천사에 의하면, “정윤천의 말들은 온몸으로 살아낸 자리에 피어난 씀바귀 꽃 같다. 신산한 누대의 삶들이 즐비하게 누운 들판에서 누군가 나직이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같다. 그것은 그가 걸어온 길에서 만난 키 작은 풀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것들을 그는 잊혀져가는 모국어로 맛깔나게 노래한다. 내 어머니는 사라진 해동성국 발해라고. 이 들판을 한 없이 걸어가면 두 나라의 해안을 간직하고 있는 미쁘장한 여자 발해가 있다고. 나는 가느다란 발목을 가졌던 여자, 사라진 발해의 아들이라고. 해서 그의 언어는 먼 시간의 저편에서 들리는 고어처럼 신비롭고 낯설다. (중략) 그것이 발해라는 시간의 소서사이며 이 민족의 대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보여주고 있는 그 소소한 일상들은 사라진 시간의 저편과 닿아 있고 그것은 내 존재의 뿌리 어머니에서 비롯된다. 깊이 있는 사유와 노회한 비유, 돌올한 말의 운용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시집에 당분간 붙들려 있을 것 같다.“ 고 평하였다.

 

정윤천 시인은 그동안 문단을 떠나 개인 사업에 전념하다가 삼년 전부터 시의 길로 들어선 셈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 강의를 맡게 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처음엔 강의도 창작도 잘 되지 않아서 애를 먹어야 하였습니다. 우선 시에 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보니 잠자고 있었던 창작에 대한 욕구 역시 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해오던 일이 터덕거려서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들이 여의치 않은 일들이 많았던 밤에는 자주 흉몽에 시달리기도 하였지요. 꿈속에서 주로 동전을 줍곤 하였는데, 무엇이든 집어서 손바닥을 펼치면 거기 동전이 있곤 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인가 동전에 관련된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걸 소재로 시집 속에 들어있는 ”루마니아 동전“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지요. 오랜 시간 그 시를 붙들고 매만지던 과정에서 진정으로 시를 쓴다는 의미에 대하여 어렴풋이 깨달아지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그는 제법 많은 분량의 시들을 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작년에 수상하게 되었던 지리산 문학상의 수상작들 역시 “루마니아” 동전 이후에 쓰여져 지상에 발표된 작품들이었다.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심사자들은, 무엇보다 정윤천의 시에게로, 곁눈질을 하지 않고 세태에도 물들지 않은 자기 자신만의 독특하고 특출한 시정신과 고집(?)에게로 보다 많은 점수를 주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았던 유종인 (시인) 또한 “정윤천 시인의 시적 안목은 소멸의 운명과 신생의 갈림길에 놓인 풍속적인 존재의 현황을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않고 심리적 공생의 변환물로 만들어 보여주는데 능란하다. 시인은 줄곧 기억의 현장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며 격절(隔絶)이 느껴질 수도 있는 인상(impression)적인 경험들을 현재의 심리적 건축물로 재생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시인의 줄기차고 늡늡한 기억과의 조우와 시적 환대(歡待)는 단순히 과거 회고주의에 대한 영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옛 해안처럼 길었고/ 발해는 거기 눈을 감고 있었다/ 발목이 물새처럼 가늘어 보여서 마침내 발해였을 것 같았다/ 사직을 닫은 해동성국 한 구가/ 미처 닿지 않은 황자나 공주들보다 먼저 영구차에 오르자/ 가는 발목을 빼낸 자리는/ 발해의 바다 물결이 와서 메우고 갔다 발해처럼만 같았다.

-<발해로 가는 저녁> 후반부.

 

(전략) 서사시적 대상과 서정적 상관물의 겹침(overlap)을 통한 알레고리적 상황의 탄생, 시적 서술 화법의 반복을 통한 뉘앙스의 발생 같은 매우 유의미한 방법론이 「발해로 가는 저녁」에는 늡늡하고 유장하게 저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의법적 관점에서의 발해(渤海)의 환생(rebirth)은 국가와 개인이라는 대척적이고 대칭적인 상관성을 하나의 유기체적인 관점에서 쇠락하는 존재의 숙명적인 비유(metaphor)로 환원해 내는 저력을 선보인다. (유종인의 해설 일부)

이처럼 이 시집의 표제작인 “발해로 가는 저녁”에 대한 해설은. 시인의 기억과 현실이, 현재라거나 당시의 순간으로 건너와 조우하고 상관하며, 얽히고 푸는 과정에서 차용된 시인의 명민한 시적발상의 개화이거나 개안의 지점을 밝혀주고 있었다.

 

▲     © 이미루 기자

 

당신이 멀리 있어서 봄비가 내렸습니다// 가난한 사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는

백설白雪의 문장 한 줄이 불어가고 난 뒤에서 그랬습니다.

<내가 읽었던 가장 아름다운 시의 제목> 전문

 

다른 한편으로는 정윤천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나타난 단시풍의 선언적 언술에 주목하게 만든다. 시적 대상에 따른 언술을 최대한 간략하게 하면서도 메시지의 울림에 대한 극대화의 지점에 그의 시들은 집중하고 있는 듯이 읽힌다. 가령, 한 행의 시인 “악수”에서는 “강물과 나뭇잎을 알아차리는 일도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전할 때, 그의 시의 묘미가 독자들의 가슴을 사뭇 서늘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벌써부터 시집 이후의 시들에 대하여 깊은 천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제발 다시는 생활이거나 지금보다 나쁜 상황들이 나로부터 시를 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그동안의 노심초사와도 같았던 시인의 날들을 짐작하게 해주기도 하였다.

 

정윤천 시인은 현재 광주 시내에 있는 두 곳의 강의실에서, 그가 시 창작의 과정을 통해 새롭게 일구어낸 시의 감각들과 시에게서 파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으며, 스포츠 한국의 지면에 격주로 '정윤천의 시로 읽는 세상'이라는 시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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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2 [18:04]  최종편집: ⓒ 전남방송.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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