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윤현 시인
이음동의어
문득, 가벼움과 두려움은
이음동의어라는 걸 깨닫는다
적어도 사랑이라는 관계에서는 말이다
무거운 것은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이라서
깊은 곳은 어두운 곳이라서
어두운 곳은 무서운 곳이라서
부유하는 말장난으로 끝없이 가벼워지는 것은
깊이 빠져드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별과 귀찮음도 이음동의어다
모든 걸 감내하기 버겁다는 말은 귀찮음을
감당하기 싫다는 뜻이다
이별은 모든 걸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라서
귀찮음을 씻어준다
혼자라는 동굴은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러고 보면 혼자와 편안도 이음동의어다
가끔 불편 없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 혼자가
외로움이라는 감각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그건 외로움과 사랑이 이음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모르면 외로움도 모른다
삶과 함께 유예를 반복하는 죽음처럼
사랑에 대한 이별 또한 유예된 이음동의어다
창밖에는 천둥이 우릉우릉
겨울비에 가을이 쓸려가고 있는데
오늘 나는 편안하다, 편안하기로 한다
너 또한 쓸려가기로 한다
라테를 마시며 레테를 생각했다
홍엽의 축제는 끝났다
화려함을 표백하는
무채無彩의 계절이 시작되는 아침
레테의 강은 망자가 아니라
이별을 품고 살아야 하는 자들의 강
겨울은 어떤 기억을 지워가며
유채有彩의 봄을 맞이하게 되는지
손발만큼이나 시릴 가슴으로
이 겨울을 버텨야 할 나는
국화 꽃다발을 들고
망각이나 희석 같은 단어를 생각한다
기억을 쪼아먹는 까마귀 하늘을 덮고
시간의 평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레테의 강
다시 봄은 오고
무덤가 개나리 노란 꽃망울 움틀 때쯤
한결 맑아진 애도를 안고
마른 뗏장 토닥거릴 나를 그려본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
카네이션 향기 그윽하겠다
까마귀 사라져 산비둘기 울어 줄 것이고
등 뒤로는 레테의 강 숨죽여 흐를 것이고
프로필
월간모던포엠 신인문학상 수상
모던포엠 작가회 회장
모던포엠 자문위원
시나무 동인
건축가(대한민국 건축문화대상, POSCO 강구조작품상 등 다수 수상)
저서/ 곤지곤지 죔죔(모던포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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