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넝쿨장미처럼
한춘화
나는 상자 안에서 시작되었어요
방울뱀 소리를 수집하는 귀는
엄마가 아기 상자에 넣던 그 날
울던 빗소리에 뾰족하게 자랐어요
세상에 나오며 딴 급수
뇌성마비 1급 지체장애 1급 시각장애 1급
그림자 없는 방 안에
마른 인형처럼 눕히면
몇 년도 그대로 있을 수 있어요
누운 자리 그대로 살이 삭고 흰 뼈가 드러나
뱉지도 삼키지도 못해 뿌리내린,
복지시설 맨 끝 방에
기록으로 존재해요
꽃이 무엇인지도 몰라요
꽃 안 피는 시절이라고 우는 당신은
많이 반성하세요
무채색 위에 핀 얼룩 같은 방에서
통점으로 이루어진 몸 가진 나도 있어요
흰 사이즈 작은 방으로 가는 길
봉사자 등에 축 늘어진 머리가 흔들리는 것이
담장을 갓 넘은 넝쿨장미 같다는데
좋은 말 같아 웃었어요
사람이 늘 때마다 작아지는 내 방
오늘은 나를 꼭 맞는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어요
잊고 살아도 된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상자에 넣는 건 중요한 것이나
필요치 않아 오랫동안 치워두는 것이래요
엄마는 중요한 나를 상자에 넣어 놓고
어느 상자인지 몰라
여태 뒤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엄마는
상자를 열어보기나 했을까요?
ㅡ 제7회 홍완기문학상 수상작
* 한춘화 프로필/
마음의행간 동인
2007시선 신인상등단
시산맥 회원
제7회 홍완기문학상 수상